정찬 기자
밝게 웃고있는 김 우수 씨
고시원 쪽방에서 살며 중국집 배달로 한 달 70만 원 남짓을 벌던 한 남자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김우수(당시 54세) 학력도, 재산도, 가족도 없었다. 미혼이었고 자녀는 없었으며, 부모와 기댈 친척조차 곁에 없었다.
우리는 흔히 한 사람의 삶을 성취와 숫자로 판단한다. 학벌, 직업, 재산, 가족 관계가 그 기준이 된다. 그러나 김우수 씨의 삶 앞에서는 그러한 잣대가 무력해진다.
그는 오토바이를 타고 자장면과 우동을 배달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몸 하나 겨우 누일 수 있는 쪽방이 그의 집이자 전 재산이었다. 누가 봐도 사회의 ‘가장 추운 자리’에 놓인 삶이었다. 하지만 김 씨는 그 자리에서 뜻밖의 선택을 했다2006년부터 그는 매달 5만 원에서 10만 원씩, 어린이재단을 통해 소년소녀가장을 후원했다. 한 번도 거르지 않았다. 수입의 상당 부분을 나눔에 썼음에도 그는 이를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또 그는 조용히 4천만 원 상당의 보험에 가입했다. 자신이 세상을 떠날 경우 그 보험금이 아이들에게 전달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2011년 9월, 배달 중 교통사고를 당한 그는 병원에서 25일간 사투를 벌이다 끝내 숨을 거뒀다.
이름 없는 배달원의 죽음은 예상 밖의 반향을 일으켰다. 장례식장에는 대통령과 영부인의 조문이 이어졌고, 정계와 시민사회 인사들이 고개를 숙였다. 영정 앞에는 그에게 도움을 받았던 아이들의 편지가 놓였다.“희망을 잃지 말고 당당하게 살겠습니다.” 그 순간, 김우수 씨는 더 이상 가난한 배달원이 아니었다. 그는 누군가의 삶을 떠받친 어른이었고, 이 사회가 잊지 말아야 할 스승이었다.
AI가 인간의 일을 대신하고 효율과 성과가 모든 것을 평가하는 시대다. 그러나 알고리즘이 결코 계산하지 못하는 가치가 있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자신의 몫을 줄여 타인의 삶을 살리는 선택이다. 기부는 여유가 있을 때만 하는 일이 아니다. 봉사는 돈이 남아서가 아니라 마음이 남아 있을 때 가능하다.
김우수 씨는 가장 추운 삶의 자리에서 가장 따뜻한 씨앗을 뿌린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마지막은 비극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남은 깊은 울림이 됐다. 그가 떠난 날, 많은 이들이 오래도로 울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의 이름을 묻는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며 살고 있는가.”
